대학4-H 활동 소개
About 대학4-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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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 8.19, 2023

piia와 9일부터 11일까지 함께 했다. piia는 댄서로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었다. piia는 미국으로 ifye를 다녀왔었고 핀란드에 온 나와 함께하기를 원했고 나 역시 piia를 만나고 싶었다. piia와 놀이동산을 가고 박물관을 방문하였다. 그중 최고는 Tampere에서 piia와 그들의 단원들의 불꽃 쇼를 직관한 것이다. 백야가 서서히 끝나 어두워진 하늘 아래 호수 앞에서 열린 불꽃 쇼는 수많은 사람의 시선을 끌었고 나 역시 계속 감탄했다.
piia와 단원들의 분장한 모습에 조금 무서웠지만, 그들은 Tampere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국어 교습소가 있다는 것도 소개해주며 “enjoy"라는 말까지 건넸다. piia는 내가 핀란드에서 만난 사람 중에서도 영어를 굉장히 잘했다. 그래서 나는 더욱 내 할 말을 하지 못해 아쉽다. 그녀의 질문에 답을 잘 해야 했는데 서툰 영어에 그쳐 대답을 길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핀란드 교육이 유명한 건 익히 알고 있었다. 핀란드 교육을 직접 접해보고 싶었던 나는 핀란드 교육 중심도시 Jyväskylä와서 정말 들떠 있었다. 8월 15일 3명의 홈스테이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수업 참관을 하였다. 친구들과 신나게 학교에 가는 아이들이 귀여웠다. 앞으로 먹을 일이 없을 거 같은 초등학교 급식 또한 맛있게 먹었다. 눈여겨본 점은 선생님을 돕는 helper가 수업마다 함께한다는 점이였다. 그리고 수업 중 갑자기 기지개를 켜고 체조하는 시간이 있어서 놀랐다. 또한, 복도에 걸러진 큰 방석을 교실 바닥에 깔고 학생들은 눕고 선생님이 마치 동화책을 읽어주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참 인상 깊었다. 아이들은 학교를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와 자꾸 대조하게 되었고 생각이 깊어졌다. 다음 날은 고등학교에 가 핀란드어 수업을 2명의 홈스테이 아이들과 같이 들었다. 빌리야랑 오토바이를 타고 하교했는데 정말 긴장됐고 짜릿했다.
더운 날은 호수 건너편의 건물들을 보며 호수에서 수영하는 게 좋아 한없이 넋 놓기도 했다. 매일 먹던 빵도 이제는 주식으로서 익숙해져 있었다.
Jyväskylä 4H 관계자를 만나며 4H 사무실을 구경하였다. 핀란드 지역마다 위치한 4H가 지역 청소년을 위해 최선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4H가 핀란드에서는 정말 유명한 단체라는 말을 듣고 한국 4H도 인지도가 더욱 올라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각자 가사분담을 맡아 요리도 하고 청소도 하였다. 가만히 있는 거 같아 도와주려 했지만 8명의 아이가 각자 역할이 있으니 선뜻 나서지는 않았다. 숲을 하이킹하며 소시지를 구워 먹고 블루베리를 따는 것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취미 중의 하나가 되었다. 딱히 취미가 없던 나였는데 많은 취미가 생겨버렸다. 6살인 TILDA가 작은 소나무 열매를 계속 땄는데 알고 보니 내일 한국으로 떠나는 나를 위해 선물이었다. TILDA가 준 편지와 솔나무 열매를 보며 순수한 아이의 마음에 감동하였다.
MARIA와 ANTTI는 영어를 잘하지 못했지만 계속 영어로 나에게 할 질문들을 연습하였다. 핀란드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나를 위해 아이들에게 영어를 사용하라고 말하며 매번 핀란드어를 영어로 해석해주는 배려로 나를 도와줘서 참 고마웠다. 그리고 같이 아시안 식당에 가서도 나의 반응을 계속 살펴줘서 고마웠다. 공항으로 가는 날 마리아와 ANTTI와 인사를 했는데 그들의 눈에서 진심을 느낄 수 있어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ANTTI가 나에게 해줬던 “YOU ARE STRONG"이라는 말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밤새 비행기가 북극을 통과하며 추웠었다. 아직 어리둥절했지만, 도착 후 내린 일본 도쿄는 34도였다. 이제야 여름을 실감했다. 인천 공항 검사대에서 줄 서 있는 수많은 사람이 급하게 나가기 위해 걸음을 서두르는 것을 보며 한국에 온 것을 실감했다. 핀란드에서 보낸 두 달간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기도 했고 여러 감정이 뒤섞여 울컥했다.
핀란드 사람들은 재활용에 정말 진심이다. 거의 모든 용기에 ”RECYCLING“이 적혀 있고 마트에 가면 병과 영수증(마트에서 물건과 교환)을 거래해 준다. 사람들은 자연을 사랑하며 과일도 세척 없이 바로 먹는다. 음식을 먹기 전 길가의 풀로 손을 닦고 미세먼지 하나 없는 하늘에서 천진난만하게 수영을 즐기고 베리를 따던 아이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항상 나에게 ”IF YOU WANT"라고 제안해주던 가족들이 떠오른다.
나를 배려해주고 존중해주는 그들의 격 있는 친절함을 나도 배우고 싶었다. 무엇보다 정직함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서로서로 신뢰하는 것 같았다. 그 당시 열풍이던 cha cha cha 노래도, 핀란드 국민 캐릭터인 무민도, 가족과의 시간을 정말 많이 보내는 가족주의인 문화도 생각난다. 나와는 정말 다른데 왜인지 몰라도 적응해서 정말 잘 살았다. Anne가 나에게 해줬던 “ you are kind and open mind"라는 말도 생각난다. 나는 핀란드 사람들이 개인주의 문화에 내성적인 특징을 띄고 있다고 해 나름 기대했었다. 나 역시 개인주의에 내성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와보니 나에겐 정말 잘 맞아서 평생을 한국에 살지 않아도, 나에게 맞는 나라를 찾아 살아보는 것도 괜찮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다. 그리고 한국에 도착하면 영어 실력을 무조건 올릴 것이라는 목표가 생겼다.
IFYE 파견 전 경비를 스스로 벌고 동시에 영어 공부를 하며 성적을 올렸었다. 준비 과정은 쉽지 않았다. 누군가는 나에게 미래를 위해 열심히 달릴 때라며 조언을 해주기도 하셨다.
하지만 그냥 내 마음은 핀란드에 가고 싶었다. 나는 내 마음을 따를 용기를 가졌을 뿐이다.
현재의 나는 평생을 곱씹을 추억 하나를 만들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됐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와는 너무나 다른 나라에서 혼자서 씩씩하게 내 인생을 살았었다. 무엇보다 나도 내 도움이 필요한 외국인을 기꺼이 돕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엄청 높은 건물도, 정말 맛있는 음식들을 매일 먹은 것도, 값비싼 여행을 한 것도 아니지만, 몸은 고되었지만, 마음 하나만은 정말 편했다. 잔잔한 일상의 행복을 선물 받았다. 오늘의 나도, 미래의 나도 매일의 행복을 그리며 살길 바란다.